국가사적 제217호 당성에서 서문지 능선길을 따라 600여미터 만 내려가면 칠곡2리 마을회관이 나온다. 화량만을 송산면 칠곡리에서 서신면 전곡리로 당항로가 동서로 가로질러 제부도 대부도 가는 칠곡2리 당항성 오르는길 위쪽에 전원주택지 개발이 한창이다.
이제라도 천편일률적인 전원주택지 개발이 아닌 고대항구 당은포의 옛모습을 재현 포구에 즐비한 시장으로 주민들과 함께하는 개발사업이 이루어 지길 기대해본다.
「국토의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제63조(개발행위허가의 제한)를 근거로 개발행위허가제한지역으로 화성시 고시 2023-1호(2023.1.2.)로 고시되었으며 토석채취제한 지역이기도 하며, 화성시에서는 지난 2011년부터 당성지역 종합정비계획의 일환으로 대대적으로 발굴조사 및 2017년 역사문화 콘텐츠 개발사업 2018년에는 당성과 황해의 문화 그리고 해양문화 교류의 중심지 화성시의 위상을 드높이고자 국제학술 심포지움을 개최하기도 했다.
다만 화성 당성종합정비계획은 서신면 상안리 일원으로 한정되어 있어 자칫 당성 서문쪽 화량만 전곡리 칠곡2리 지역은 은수포로도 비정되는 지역이기에 고대 대륙 수.당나라로 진출하고자 백제에서 개척한 포구를 고구려 세력을 북으로 밀어내며 삼국시대 변방에 위치하던 신라가 551년 이후 한강유역을 차지하고 당나라와 직접적인 교류가 가능해지면서 삼국통일이라는 최종 승자로 역사에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1400여년전 대륙의 강자인 당나라와의 소통은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으며, 신라는 당성이 위치한 남양만 일원에 대한 군사적인 점유는 서해바다를 통한 직접적인 교역 및 인적교류로서 당나라에 구법승 및 유학생 교환은 현대사회와도 일맥상통하는 문화의 교류뿐만 아니라 정치 군사 외교등 중요한 돌파구를 마련하면서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이라는 대업을 완성한 것이다.
원효와 의상 대사의 이야기에서도 알수 있듯이 당시 당성은 당나라로 입도길목을 송고승전『宋高僧傳』에 언급한 본국해문당주계『本國海門唐州界』로 기록, 즉 의상은 이곳에서 해문(바다의 문-항구 또는 포구)에서 배를 타고 당의 등주(登州) [현재는 봉래(蓬萊)-산동반도에 있는 당나라의 최대 무역항구]로 들어 갔다.
당성은 서해안의 대표적인 관방유적인 동시에 항구로서 백제가 고구려에 대항해서 해외로 진출하는데 그 출발점이었다. 백제는 비록 국내에서는 고구려와의 갈등으로 시련을 겪었으나 그 극복책으로서 서해로 진출하여 중국과 일본으로 뻗어나간 우리 역사상 최초로 한반도를 벗어난 국가였으며 그 도약의 출발점은 당성이었을 것이다.
신라는 한반도 남쪽 귀퉁이에서 부족국가로 출발하여 한강 유역으로 진출은 가야계 김유신장군의 조부인 김무력장군이 553년 신주를 설치하고 신주정의 군주가 되었으며, 1년후 554년 옥천의 관산성 전투에 지원군으로 참전하여 백제군을 전멸시켰다. 이로서 당성을 백제로부터 탈취하여 서해 진출의 계기를 마련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신라는 내륙국가에서 당성을 차지함으로써 해양국가로서의 기틀을 마련하여 수.당과의 접근이 가능해지면서 최강국으로 도약함과 동시에 통일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당성은 신라로 하여금 내륙국가의 좁은 의미에서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내륙국가의 굴레를 벗어나는 단초를 제공하여 국가 발전에 바탕이 되어 통일신라의 번영에 기반을 제공하게 되었다.
당성의 가치는 단순히 삼국시대의 산성으로서만이 아닌 신라와 중국을 잇는 문화적인 경로의 중요한 기점으로서 동아시아로 이어지는 실크로드의 중요한 기점 관방유적이며 국제무역항의 시발점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당성은 신라에 의한 통일이후 항구를 방어하기 위한 관방유적의 성격을 벗어나 지역의 정치적.경제적.역사적 중심지로 확대하였으며, 발굴조사로 알려진바에 의하며 통일이후에 2차성으로의 포곡식 산성으로의 확대했다는 것은 역사적. 문화적. 고고학적 가치 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며 자원이다.
화성은 삼국(고구려,신라,백제)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유적인 마하리 고분군과 더불어 화성 당성이다.
이는 화성시의 역사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유적으로서 당성 유적의 정비와 함께 주변지역 당은포 또는 은수포로 비정되는 주변지역의 주민들과 화성시민들의 정체성이 반영된 계획을 수립하여 할 것이다.
또한 대당 포구시설과 관련해서는 발굴조사가 전무하여 구체적으로 지역을 비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당항성이니 당성진 등 당성에 비정되는 관방 유적뿐만 아니라 구전 또는 지명으로 전해지는 지역을 당항진 또는 당은포가 어느곳에 위치했느지를 특정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안목으로 관심을 가지고 조사 발굴이 추진된 이후 오국(신라,백제,고구려,발해,당)시대실크로드의 출발 항구로서 당은포의 위상이 정립된다면 화성시의 미래를 내일을 조감해본다.
1400여년이 지난 화성시는 국제교역항이었던 당성지역을 고대 실크로드의 출발 항구라는 모토 아래 당성 종합정비 또는 병행 주변항.포구 비정지역 발굴 및 학술 심포지움을 개최하여 종합적인 고대사에 대한 한반도의 대륙진출 출발항에 이곳 당성주변 화량만 전곡, 칠곡리 일원에 고대 오국(신라,백제,고구려,발해,당나라등)민속박물관을 복원하여 역사와 문화가 함께하는 실크로드(경주-당성-등주-장안-토번) 출발항의 면모를 복원하여 고대 오국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장으로서 화량만 지역 간척지에 계획해보는 것이어떨까 제안해본다.